2022년 8월 개봉작 [노스맨]을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트로이](2004), [킹덤 오브 헤븐](2005), [300](2007), 최근에는 [왕좌의 게임]과 유사한 전쟁 역사물로 생각하고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이라면 적잖이 당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적어도 한 두 차례의 대규모 전투 장면 같은 것을 기대했을텐데 [노스맨]은 그런 시각적인 스펙타클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작품이니까요.
(이하 스포일러)
10세기 바이킹 부족의 왕자가 아버지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삼촌의 칼날을 피해 도망했다가 뛰어난 전사로 성장하여 복수에 성공한다는 큰 줄거리는 다름아닌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의 그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라이언 킹]의 서사 자체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가져온 것이었다고 본다면 [노스맨]은 기왕이면 영국 대문호의 비극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주는 편이 좀 더 있어보이고 좋은 거겠죠.
서사적 근간은 비록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못해 고루한 느낌마저 줄 수 있는 [노스맨]이지만 그 디테일에 있어서는 북유럽 바이킹의 역사와 전설에서 가져온 소재들을 풍성하게 담아내면서 기존의 전쟁 역사물들과의 차별점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마블 영화들을 통해 친숙해진 북유럽 신화 속 소재들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그 원류를 탐험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 [노스맨]의 독특한 분위기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역시나 공동각본과 연출을 맡은 로버트 에거스(Robert Eggers) 감독이라고 하겠습니다. 감독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안야 테일러-조이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했던 [더 위치](The VVitch : A New-England Folktale, 2015), 그리고 윌렘 데포와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라이트하우스](The Lighthouse, 2019)에서 보여준 독특한 연출 감각은 다른 장르물들과는 분위기가 한참 다른 [노스맨]을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관문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노스맨]은 특히 [더 위치]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한 질감의 프로덕션 디자인과 유사한 결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더 위치]와 [라이트하우스]의 감독 로버트 에거스가 만든 새 영화로서 [노스맨]은 좀 의외의 선택이었고 역시나 결이 좀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기괴함에 대한 취향은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좀 더 대중적인 스토리라인의 이야기를 다뤄야만 하는 숙제를 절충해 내놓은 느낌이랄까요.
한번쯤 큰 규모의 작품(제작비 6천만불)에 도전해보는 기회를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만 [노스맨]은 [더 위치]와 [라이트하우스]에 매혹된 팬들이 보고 싶었던 종류의 이야기와는 좀 거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노스맨] 보다는 현재 촬영 중인 새 영화 [노스페라투]에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진짜 장기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게 됩니다.
[노스맨]에는 한 자리에 모아놓기 힘든 배우들이 의외로 많이 출연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빨래판 몸짱 주연 배우가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이고 안야 테일러-조이, 니콜 키드먼 정도가 출연하는 건 알았지만 암레스(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아버지 아우르반딜 왕으로 에단 호크가 출연한 건 의외였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로버트 에거스 사단의 일원이 되어버린 윌렘 데포도 등장하고, 아이슬란드 출신 가수 비요크도 짧지만 강렬한 출연을 하셨더군요.
내용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부분은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군드룬 왕비를 통해 모성에 대한 신화를 박살내버리는 부분이었습니다. 생존과 후계를 위해 늑대와 인간의 중간 지점쯤에서 싸워야 했던 전사들 뿐만 아니라 우리 여성들도 그에 못지 않은 거친 욕망과 냉혹함을 소유자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 [노스맨]이었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래서 마블의 [토르 : 라그나로크](2017) 이후 등장하는 매력적인 발키리(테사 톰슨)와 달리 [노스맨]에서의 발키리(케이티 패틴슨)는 기존 남성들의 성적 대상화가 되었던 모습을 거부한 진짜 전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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