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6

[시리즈] 안도르 (Andor, 2022) 시즌1, 4화

제국 경비대에 체포될 뻔한 위기를 모면한 안도르는 루덴 라엘(스텔란 스카스가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반군의 '현금 탈취' 계획에 용병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제국 수도의 골동품상이면서 은밀히 반군을 지원하고 있던 루덴 라엘은 자금 마련을 위한 반군의 계획을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처음부터 안도르를 투입할 생각으로 접근했던 거죠. 이번 드라마의 약 5년 뒤 시점을 다루게 되는 영화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2016)에서 안도르는 반군의 장교(대위) 신분으로 나오는데 그 시작은 일회성 알바였던 겁니다. 루크와 한 솔로도 처음에는 그랬죠.



 

4화의 배경이 되는 알다니의 풍광이 마음에 들어 찾아보았더니 스코틀랜드인 것 같습니다. 3화까지 연출을 맡았던 토비 헤인스에 이어 이번 4화부터 메가폰을 잡은 수잔나 화이트 모두 영국 출신 감독들이고, 출연진 쪽에서도 유난히 영국식 액센트를 사용하는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는 걸 보면 런던에 스튜디오를 차렸던 것 같네요. 그러고 보면 드라마의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가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와 같은 영국 스파이 영화와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빌딩해나가는 이번 편에서는 반란군 뿐만 아니라 제국의 보안 장교들의 회의나 내부 갈등, 지난 에피소드에서 사고를 치고(?) 좌천된 보안회사 장교 시릴 칸의 아파트 같은 장소들이 나오는데 이런 장면들 역시 기존 [스타워즈] 본편에서는 NPC나 다름 없던 주변 인물들의 일상으로 시선을 옮겨간 연출 의도를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안도르]라는 작품 자체가 안도르라는 인물의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그와 그들이 살았던 제국의 어두운 그늘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2022. 10. 12 작성)

[영화] 앰뷸런스 (Ambulance, 2022)

마이클 베이 감독의 극장 개봉 신작 [앰뷸런스]가 넷플릭스에 올라와 감상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었던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6 언더그라운드]을 볼 수 있었던 게 2019년이었으니 3년 만에 내놓은 연출작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이클 베이의 연출작이라고 하면 관객마다의 호불호는 나뉠 수 있어도 기술적인 완성도에 있어서는 딴지를 걸 수 없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냥 잘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언제나 한 발 앞선 촬영 기법의 도입으로 이후 다른 영화들에 영향을 주는 트렌드 세터에 가깝다고 해야겠죠.



[앰뷸런스]는 LA 도심의 은행 털이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형제(제이크 질렌할, 야히아 압둘 마틴 2세)가 총상을 입은 경찰과 구급대원(에이사 곤잘레스)을 인질로 삼아 앰뷸런스를 타고 도주하는 상황극입니다. 영화 좀 보던 분들이라면 감상 도중에 아 이거 마이클 베이 영화로구나 하고 눈치를 채실 수 있을 만큼 자신의 평소 스타일을 가감 없이 쏟아내고 있는 편입니다. 잘 모르고 보시는 분일지라도 이 작품은 평소에 넷플릭스에서 보던 다른 영화들과는 액션의 스케일이 다르다고 생각하실 것이고 그럼에도 마지막 엔딩에서는 마치 정부 투자 대국민 애국심 고취 영화를 보는 듯한 특유의 배경 음악과 슬로우모션들 때문에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기존의 마이클 베이 감독 작품들에서 이번 [앰뷸런스]가 한 발 더 앞서나간 지점은 카체이싱 장면들에서 사용된 드론 카메라의 사용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는 드론 촬영으로 얻어내는 멋진 항공뷰 장면을 비단 액션이 강조된 영화가 아니더라도 자주 볼 수가 있는 편인데 [앰뷸런스]에서는 높은 상공에서 내려보기만 하는 버드뷰 뿐만 아니라 정신 없이 달리는 차량의 주변에서 시작했다가 어느새 위로 올라가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카메라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그러잖아도 정신 없는 추격씬에서 이런 카메라 워킹(또는 플라잉)까지 굳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만 마이클 베이는 이번에도 새로운 시도에 망설임이 없었고 이런 시도는 또 다른 연출가들과 촬영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게 될 걸로 예상됩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이야기를 다시 뒤바꿔서 말해보자면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는 기술적인 탁월함이 있지만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편이지요. 근엄한 영화 비평의 관점에서 보자면 놀려먹기 좋은 허점이나 편향된 관점의 문제도 있고 단순히 액션 영화로만 놓고 보더라도 스타일이 어느 한 쪽으로 크게 치우친 데다가 이것이 최근의 관객들의 취향과는 잘 맞지 않고 있다는 단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비록 코로나 상황이긴 했지만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치고는 극장 흥행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어중간한 액션물들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편이라 해두고 싶네요.

마지막 TMI로는 2005년 동명의 덴마크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아마도 소박했던 원작을 그대로 다시 만들었다기 보다는 기본 설정만 가져오고 그외에는 마이클 베이식 변주로 채워넣은 작품이 이번 LA 버전의 [앰뷸런스]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


(2022. 10. 12 작성)

[영화]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 (Luckiest Girl Alive, 2022)

10월 7일 금요일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영화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를 감상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되어 전세계 동시 공개된 모양입니다. 순위표에는 지난 4월 국내 개봉 이후 같은 날 넷플릭스에 함께 올라온 마이클 베이 감독의 신작 [앰뷸런스]가 단번에 1위를 차지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저의 선택은 밀라 쿠니스의 새로운 출연작이 먼저였습니다.

변변한 홍보 기사나 예고편도 본 적이 없었던 작품이기에 불금을 함께 할 새로운 영화가 뭐가 있나 살펴보다가 - 넷플릭스야 말로 주간이나 월간으로 새로운 영화/시리즈물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해요 - 이건 뭐지? 하며 먼저 좀 알아봤습니다.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이고 연출을 맡은 마이크 바커는 영화 보다 TV 시리즈 쪽에서 인정을 받아온 인물 같습니다. iMDb 평점이 6.5라는 건 지금 당장 봐야 해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실망할 일도 없을 거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될 노릇입니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영화 소개 문구로서는 드물게 '몰입감 최강의 드라마 영화'라는 표현이 붙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는 성공적인 커리어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결혼을 앞둔 뉴욕의 여성잡지 기자 어니 파넬리(밀라 쿠니스)가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 더이상 '진실의 언저리에만 머물지 않기'로 하는 과정과 그 영향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총기 살인 사건의 생존자일 뿐만 아니라 희생자들에 의한 강간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주인공 자신과 주변의 모든 이들, 나아가 위선과 기만에 의해 속고 있는 더 많은 이들까지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진실이기에 차라리 지금까지 그래왔듯 잘 감추어두는 편이 나은 선택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기도 하니까요.

세상 살이의 이치와 그 안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을 거스르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작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선택을 통해 그런 용기를 전파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원작이 소설이긴 하지만 작가 본인의 경험담이었다면 스스로를 위한 구원의 방식이기도 했겠지요. 결과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는 강간 피해자들이 사건 이후 어쩌면 평생 겪어야 할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작품이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입니다. 강간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심리적 고통은 모두의 인식과 노력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 부분인 것이 맞습니다.



어찌보면 상당히 단순한 플롯의 작품이지만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시점을 절묘하게 교차해내는 스릴러의 구성으로 몰입감이 상당하다는 점은 인정할 만 합니다. 원작자인 제시카 노올이 직접 각색한 시나리오와 마이크 바커의 연출 합이 잘 어우러진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단독 주연 배우로서 우뚝 서게 된 밀라 쿠니스의 대기만성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아마도 외모가 너무 뛰어난 데다가 세상에 알려지던 시점의 코믹한 이미지 - [요절복통 70쇼](That 70's Show, 1998 ~ 2006) - 때문에 지속적으로 평가절하되어 온 배우 중에 하나가 바로 밀라 쿠니스 아니겠습니까. 그간 꾸준히 활동을 해오고 있었음에도 [블랙 스완](2010)에서의 조연 연기 외에는 별다른 화제작이 없었고 작품 보다는 애쉬튼 커쳐와의 결혼으로 유명세가 유지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밀라 쿠니스에게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는 그녀의 필모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분기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80년대 책받침 여신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제니퍼 빌즈도 반가운 얼굴이었습니다. [플래쉬댄스](1983)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었지만 마찬가지로 영화계의 주변부에서만 꾸준히 머물렀던 그녀의 모습을 스타워즈 드라마 [북 오브 보바 펫](2022)에 이어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에서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리즈 위더스푼이 공동 설립한 제작사 퍼시픽 스탠다드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의 영화화 판권을 구입한 건 책이 출간되기 한 달 전 2015년의 일이었습니다. 상업적 성공 보다는 세상에 널리 알릴 가치를 보고 판단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


(2022. 10. 11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