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금요일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영화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를 감상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되어 전세계 동시 공개된 모양입니다. 순위표에는 지난 4월 국내 개봉 이후 같은 날 넷플릭스에 함께 올라온 마이클 베이 감독의 신작 [앰뷸런스]가 단번에 1위를 차지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저의 선택은 밀라 쿠니스의 새로운 출연작이 먼저였습니다.
변변한 홍보 기사나 예고편도 본 적이 없었던 작품이기에 불금을 함께 할 새로운 영화가 뭐가 있나 살펴보다가 - 넷플릭스야 말로 주간이나 월간으로 새로운 영화/시리즈물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해요 - 이건 뭐지? 하며 먼저 좀 알아봤습니다.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이고 연출을 맡은 마이크 바커는 영화 보다 TV 시리즈 쪽에서 인정을 받아온 인물 같습니다. iMDb 평점이 6.5라는 건 지금 당장 봐야 해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실망할 일도 없을 거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될 노릇입니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영화 소개 문구로서는 드물게 '몰입감 최강의 드라마 영화'라는 표현이 붙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는 성공적인 커리어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결혼을 앞둔 뉴욕의 여성잡지 기자 어니 파넬리(밀라 쿠니스)가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 더이상 '진실의 언저리에만 머물지 않기'로 하는 과정과 그 영향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총기 살인 사건의 생존자일 뿐만 아니라 희생자들에 의한 강간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주인공 자신과 주변의 모든 이들, 나아가 위선과 기만에 의해 속고 있는 더 많은 이들까지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진실이기에 차라리 지금까지 그래왔듯 잘 감추어두는 편이 나은 선택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기도 하니까요.
세상 살이의 이치와 그 안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을 거스르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작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선택을 통해 그런 용기를 전파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원작이 소설이긴 하지만 작가 본인의 경험담이었다면 스스로를 위한 구원의 방식이기도 했겠지요. 결과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는 강간 피해자들이 사건 이후 어쩌면 평생 겪어야 할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작품이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입니다. 강간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심리적 고통은 모두의 인식과 노력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 부분인 것이 맞습니다.
어찌보면 상당히 단순한 플롯의 작품이지만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시점을 절묘하게 교차해내는 스릴러의 구성으로 몰입감이 상당하다는 점은 인정할 만 합니다. 원작자인 제시카 노올이 직접 각색한 시나리오와 마이크 바커의 연출 합이 잘 어우러진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단독 주연 배우로서 우뚝 서게 된 밀라 쿠니스의 대기만성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아마도 외모가 너무 뛰어난 데다가 세상에 알려지던 시점의 코믹한 이미지 - [요절복통 70쇼](That 70's Show, 1998 ~ 2006) - 때문에 지속적으로 평가절하되어 온 배우 중에 하나가 바로 밀라 쿠니스 아니겠습니까. 그간 꾸준히 활동을 해오고 있었음에도 [블랙 스완](2010)에서의 조연 연기 외에는 별다른 화제작이 없었고 작품 보다는 애쉬튼 커쳐와의 결혼으로 유명세가 유지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밀라 쿠니스에게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는 그녀의 필모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분기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80년대 책받침 여신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제니퍼 빌즈도 반가운 얼굴이었습니다. [플래쉬댄스](1983)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었지만 마찬가지로 영화계의 주변부에서만 꾸준히 머물렀던 그녀의 모습을 스타워즈 드라마 [북 오브 보바 펫](2022)에 이어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에서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리즈 위더스푼이 공동 설립한 제작사 퍼시픽 스탠다드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의 영화화 판권을 구입한 건 책이 출간되기 한 달 전 2015년의 일이었습니다. 상업적 성공 보다는 세상에 널리 알릴 가치를 보고 판단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
(2022. 10. 11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