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5

[영화] 육사오 (6/45, 2022)

2022년 8월 극장 개봉작 [육사오]를 디즈니플러스에서 감상했습니다. 1등에 당첨된 로또 종이가 북한 지역으로 넘어가면서 벌어지는 코미디 영화라는 건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도 알 수 있죠. 코미디 흥행작들의 각본을 쓰다가 [날아라 허동구](2007)로 데뷔했던 박규태 감독의 두번째 장편 연출작입니다.

최전방 헌병 부대 말년 병장 박천우 역에 고경표, 북한군 하사 리용호 역에 이이경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남북 군사분계선을 마주 보고 있는 남북한 군인들이 뒤섞이게 된다는 점에서 코미디 버전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라는 생각도 들게 하는 설정인데 그러잖아도  극중 남북한 군인들이 만나 협상을 벌이는 장소 역시 공동급수구역(Joint Supply Area)라며 대놓고 너스레를 떨기도 합니다.


(이하 스포일러)



대놓고 웃자고 만든 영화에 개연성이니 작품성이니 따질 이유는 없는 거겠죠. 말도 안되는 상황 전개가 끊임 없이 이어면서 오로지 관객들을 웃겨보겠다는 목표 하나를 향해 돌진하는 영화가 [육사오]입니다.

소주 판촉물로 나눠준 6/45 로또 종이 하나가 이리저리 날리다가 최전방 부대 보초를 서고 있는 박천우 병장 앞에 떨어지고 당연하게도 이 로또는 1등에 당첨이 됩니다. 그리고 제대 후 부자로 살 생각에 부풀어오른 박천우 병장의 품을 떠나 다시 북한 땅으로 날아가버리죠. 남에서 날아온 로또 종이를 주운 리용호 하사는 사흘 간의 잠복 끝에 로또 종이를 찾으러 철책을 넘어 들어온 박천우와 만나고, 당첨금 57억을 두고 남북 간의 양보할 수 없는 협상이 이어집니다.

 


남북 정치 회담을 보는 듯한 극한 대치 끝에 협상이 한 차례 결렬되기도 하지만 일확천금을 향한 양 측의 열망은 모두를 다시 한 자리에 불어모으게 됩니다. 도무지 적절한 협상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서로 의심만 하는 상황이 이어지던 끝에 지혜로운 보급관(류승수)의 등장으로 협상이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남북 양측의 당첨금 배분은 5:5로 하고 상호 신뢰를 위해 당첨금을 찾아올 때까지 남한과 북한 군인 한 명을 교환하기로 한 것이죠. [육사오]는 1등 당첨 로또로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영화이지만 그 이상을 넘어 '남북 교환 군인'이라는 더더욱 말도 안되는 상황까지 더 밀어붙이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교환 군인으로 선발된 인물은 자연스럽게 두 주인공인 박천우와 리용호가 되었죠. 남한의 말년 병장 박천우는 북한 최전방 부대의 신병으로 머물게 되고, 북한군 하사 리용호 역시 남한 헌병으로 며칠 간을 보내게 됩니다. 두 사람은 그저 숨어서 잘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 뛰어난 활약까지 펼치게 되는데요, 리용호는 순찰 근무 중 지뢰를 밟은 동료 군인을 구해내면서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부대원들을 감동시키는 독일어 연설까지 하게 되고 박천우는 농장 집안에 축산학과 전공의 역량을 발휘해 북한군 내에 식량 생산성 향상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됩니다.



 

당첨금 수령의 임무를 맡아 자기 팔까지 희생하며 서대문역 농협 본점까지 도착한 김만철 상병(곽동연)이 팬티 앞에 부착한 로또 종이 주머니로 인해 '변태 군바리'로 내몰리면서도 남대문 세차장 뽀빠이 아줌마와의 거래로 단박에 달러 현찰까지 마련해 복귀하는 동안 박천우는 리용호의 여동생 리연희 소위(박세완)와 썸 타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리연희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김광철 소좌(윤병희)에게 정체가 발각되고 로또 당첨금을 사이좋게 나누려던 남북 간의 협력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놓고 코미디 영화인 [육사오]는 신파까지 아우르려고 하는 욕심을 내려놓으면서 나름 깔끔한 마무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박천우와 리영희의 마지막 작별 인사 장면은 은근히 남북 분단의 아픔이 현시점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더군요. 돈 걱정 없이 잘 살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과 원하는 만남을 제약 없이 갖고 싶다는 소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분단된 나라의 통일에 대한 열망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뜻밖에도 [육사오]를 통해 해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김만철 상벽을 연기한 곽동연 배우에게 한 표 주고 싶습니다. 이 영화로 상까지 받은 사람은 박세완(리영희 역)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출연한 배우들 가운데 곽동연이 다양한 톤의 연기를 깔끔하게 잘 소화해내더군요. 감독에게는 아마도 스위스 아미 나이프 같은 배우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아마도 배우로서 유일한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개성 없는 잘 생김을 하루빨리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작품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


(2023. 2. 1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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