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5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Unlocked, 2023)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되어 2월 17일에 공개된 한국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감상했습니다. 2017년에 출간된 시가 아키라의 장편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일본에서는 이미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연출로 2018년과 2020년에 두 편이나 연이어 영화화된 바 있습니다. 두 편의 영화가 모두 국내 미개봉이지만 VOD로는 출시되어 감상이 가능하네요. 원작 소설이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중 2개의 이야기가 각각 영화화가 되었고 이번 한국판 영화는 2018년 일본 영화와 동일한 단편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판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홍원찬 감독, 고아성 주연의 [오피스](2014)에서 조연출로 참여했던 김태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넷플릭스에서 투자와 스트리밍을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남게 되었지만 실질적인 제작은 CJ ENM에서 진행한 작품입니다. 천우희와 임시완이 주연으로 출연하는데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관객들이 보고 싶어했던 그런 좋은 만남이 아니로군요.


(이하 스포일러)



 

같은 날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조던 필 감독의 영화 [놉]과는 달리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제목만으로도 어느 정도 내용을 예측해볼 수 있는 편입니다. 어느새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과 비밀들까지 모두 담는 그릇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상당한 난관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실제 영화 내용도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실제 양상은 관객들이 생각해볼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지독합니다. 주인공이 잃어버린 스마트폰을 손에 넣은 인물이 하필 싸이코패스 연쇄 살인마이니까요. 이 정도면 폰 한번 잃어버려서 당해볼 수 있는 최악의 경우가 아닐까, 원작 소설의 작가는 처음부터 그런 상황을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현 시점의 한국 상황을 촘촘하게 잘 담아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마스크 착용이 자율화되는 시점을 미리 예측해서 각색한 것도 훌륭합니다.

천우희가 연기한 주인공 이나미는 인터넷 식품 벤처의 직원이고 옥탑방에서 혼자 사는 싱글이네요.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만취한 상태로 귀가길 버스에서 휴대폰을 흘렸는데 이게 오준영(임시완)의 손에 들어갑니다. 녹음된 여자 목소리로 휴대폰을 습득한 사람인 척하면서 수리점으로 유인하고 이곳에서 이나미의 스마트폰을 통채로 복제해놓고 이나미에게는 스파이웨어가 설치된 폰을 돌려줍니다. 이나미의 스마트폰은 이제 오준영을 위한 실시간 중계기 역할을 하게 되고 원격으로 모든 조작도 가능한 상태가 되죠.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오준영에 의해 이나미의 일상과 인간관계가 망가지는 이야기와 함께 포천 경찰서 소속의 형사 우지만(김희원)의 이야기를 병렬 배치하면서 단조로움을 벗어납니다. 오래 전 가출한 아들과 병든 아내를 둔 우지만 형사는 젊은 여성들을 연쇄 살인하고 암매장한 범인을 뒤쫓고 있는데 이것이 다름아닌 자신의 아들 우준영이 저지른 짓이라는 증거를 발견하게 되죠.

오준영의 폰 수리샵에서 이나미와 마주친 우지만은 오준영을 이나미의 집으로 유인해 체포할 계획이었는데 막상 오준영의 얼굴을 확인해보니 자신의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인 것을 알고 그대로 놓아주게 됩니다. 오준영이 우지만의 아들 우준영을 가장 먼저 살해하고 이후 우준영의 신분으로 활동하며(이름은 오준영을 사용하면서) 스마트폰 해킹을 이용해 여성들을 납치 살해해왔다는 사실이 이 영화가 감춰두고 있던 첫번째 반전이었습니다.




이나미의 스마트폰을 장악한 오준영은 이나미의 아버지(박호산)의 폰과 집까지 장악한 뒤 이나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죠. 오준영의 손에 이나미와 아버지까지 모두 꼼짝없이 죽게 된 상황에서 형사들을 불러와 상황을 역전(두번째 반전)시킨 것은 이나미의 기지가 발휘된 덕분이었습니다. 오준영은 싸이코패스 성향의 연쇄 살인범이지만 육체적으로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인지 형사들과 난투극을 벌이지는 못하고 쉽게 제압당합니다. 그리고 이 싸이코패스에 대한 최후의 응징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가 마련해둔 마지막 반전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소 뻔할 것만 같은 제목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이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전개를 보여주는 웰메이드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일찌감치 범인의 모습을 관객들 앞에 드러내면서 미스테리 추리극에서는 한참 벗어나버린 흐름이 되어 버렸지만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요?'를 하지 않고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극적인 긴장감은 만만치 않은 편입니다.

잘 생긴 외모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임시완은 [추격자](2008)에서의 하정우 만큼이나 훌륭한 이미지 변신을 보여줍니다. 임시완, 천우희와 함께 또 한 명의 지분 높은 배역으로 출연한 김희원 역시 '코믹한 악역'의 평소 이미지와 달리 섬세한 정극 연기를 선보이며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그외 촬영과 편집,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까지 영화 전반적인 세련된 만듬새에 일조하고 있는 가운데 달파란이 담당한 음악은 특히나 인상적입니다. @


(2023. 2. 18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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