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극장 개봉작 [놉]이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감상했습니다. 조던 필 감독의 신작이죠. 그리고 이게 대체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장편 데뷔작 [겟 아웃](2017)이 비교적 이해하기 쉬웠던 서사의 영화였던 반면 후속작 [어스](2019)는 솔직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물어보고 싶은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닌 꽤나 복잡하고도 난해한 영화였었죠. 제목만 가지고서는 도무지 내용을 짐작할 수가 없는 조던 필 감독의 새 영화 [놉] 역시 단순히 SF 호러물로 본다면 나름 독특한 작품 정도가 되겠지만 그 상징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또 한 편의 불가해한 영화로 남게될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하 스포일러)
단순히 줄거리만 놓고 보면 [놉]은 그다지 어려운 영화가 아닙니다. 시골 외딴 곳에서 대대로 말 농장을 해오고 있던 가족이 외계 비행 생물체와의 사투 끝에 승리하고 이 생물체의 존재를 증명해줄 사진까지 얻어내고야 만다는 내용입니다. 조금은 특이한 내용의 SF 영화이고 호러 영화인데 전반적으로 세밀하게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줍니다. [놉]은 그렇게 두 어 시간 정도를 재미있게 보고 끝나면 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괴상한 외계 생물체는 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아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걸까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조던 필 감독이 관객들 앞에 던져놓은 세번째 덫에 다시 한번 걸리게 되는 것이죠.
가장 먼저 영화의 주인공인 헤이우드 집안의 남매 OJ(오티스 주니어, 다니엘 칼루야)와 엠(에메랄드, 키케 팔머)은 흑인이 말을 타고 달리는 짧은 최초의 영화(1878년 [Sallie Gardner at a Gallop])에 출연했던 바로 그 흑인 기수의 후손입니다. 두 남매는 100년 영화 역사에 자신들의 지분이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고 지금도 영화나 광고 촬영에 훈련된 말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생업을 삼고 있죠.
두 남매의 농장 하늘 위에 거주하는 외계 비행 생물체는 바로 사진 또는 영화라는 시각적 매체 자체와 관련이 있습니다. 영상 매체란 한 때는 경이로운 시각적 기적이었지만 현재의 인류에게는 경우에 따라 '나쁜 기적'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존재죠. OJ와 엠의 아버지는 갑자기 하늘에서 쏟아진 동전이나 열쇠 따위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습니다. 이 외계 비행 생물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우리에게 갑작스런 재난을 선사합니다. 시트콤에 출연해서 유명했었던 침팬지 고디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폭주해 출연진들을 살해했듯이 외계 비행 생물체도 사람과 사물들을 빨아들이고 도로 뱉어내곤 하는데 피해자들에게 이것은 곧 죽음이라는 재난이 되고 마는 것이죠.
외계 비행 생물체로 인한 재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을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라보면 안된다, 바라보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저히 그것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스펙타클한 존재가 바로 이 비행 생물체이기도 하죠. 이것이 외계에서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와 함께 꽤 오래 전부터 이 지구 상공에서 살아왔던 존재일 수도 있긴 하지만 이 존재를 목격한 이상 완전히 모른 척 무시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을 지경입니다. 오히려 모두들 이 존재를 영상에 담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서 돈도 벌고 유명해지길 바랄 따름이죠. 조던 필의 이 잔혹 동화는 언제부턴가 그곳에 있어왔고 누군가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나쁜 기적'을 가져다주는 우리 세대의 영상 매체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스티븐 연이 연기한 리키 '주프' 박의 회상이기는 하지만 그가 아역 배우 시절에 출연했던 시트콤 촬영장에서 침팬지 고디의 참혹한 살인 장면을 목격하는 장면은 [놉]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호러쇼이기도 합니다. 고디는 왜인지 모르게 어른 인간들에게 화가 나있었고 자신의 생일 파티 에피소드를 진행하고 있던 촬영장을 피바다로 만들어버린 후 출동한 경찰에게 사살되어 즉사하죠. 커다란 선물 상자가 열리자 그 안에서 반짝이는(또는 반사되는 재질의) 풍선들이 나왔는데 이것이 고디를 자극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바로 그 시점에 고디가 폭주했습니다.
리키 '주프'는 어른이 되어 이때의 소품들과 필름들을 모아 개인 박물관을 차려놓고 돈 벌이를 하고, 본업으로 관광객들에게 외계 비행 생물체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쇼를 진행하다가 현장에 있던 모두가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OJ는 잘 훈련된 말 럭키를 데리고 영화 스튜디오에 갔다가 우연히 반사경에 자신의 눈을 본 럭키가 발작적인 반응을 하는 경우를 겪었었고 이때의 경험으로 외계 비행 '생물체'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인간들에게 '재난'을 선사해준 침팬지, 말, 비행 외계 생명체는 모두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반응했다는 데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모으는 것이 곧 유명해지고 성공을 가져다주는 영상 매체의 세상에서 그것을 거부하거나 그로 인해 폭주하여 '재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존재들을 다룬 [놉]은 아이러니하게도 IMAX로 촬영된 최초의 호러 영화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습니다. @
(2023. 2. 18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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