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5

[영화] 자백 (Confession, 2022)

2022년 10월 개봉작 [자백]을 넷플릭스에서 감상했습니다. 본래 2020년 11월에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상황으로 극장 개봉이 미뤄지다가 2년 여가 지나서야 뒤늦게 개봉하고 약 7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상당 수의 영화가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바로 넷플릭스에 판매되어 공개되곤 했었는데 [자백]은 좀 늦어지더라도 극장에 걸어볼만 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자백]은 2016년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Contratiempo)의 리메이크입니다. 원작을 보지는 못했지만 호숫가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고 이 상황을 처리하려는 등장 인물들의 모습을 보니 예전에 유튜브에서 봤던 영화 소개 클립이 생각나더군요. 2009년 개봉작 [마린 보이]로 데뷔했던 윤종석 감독의 두번째 장편으로, 각색은 남다정 감독, 각본에 윤종석 감독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본래 남다정 감독이 준비하던 리메이크 연출이 윤종석 감독에게로 넘어간 것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기본적으로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라고 할 수 있는 [고백]은 관객들 앞에 양파 껍질 벗겨내듯 새로운 진실과 반전을 반복하며 긴장을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드는 잘 씌여진 작품입니다. 영화 중반까지는 한 가지 진실을 놓고 서로 다른 인물의 시각에서 달리 보이는 [라쇼몽]식 전개를 보여주는데 이 때마다 사건의 디테일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선악이 뒤바뀌기도 하죠. 동일한 상황을 다시 보여주지만 그 때마다 달라지는 정황 자체가 관객에게 재미를 주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보안 전문 IT 업체 사장인 유민호(소지섭)는 불륜 관계였던 김세희(나나)를 호텔방에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유민호의 변호를 맡기로 한 승률 100%의 양신애 변호사(김윤진)와 호숫가의 별장에서 만나 진실 공방을 펼칩니다. 무죄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대신 자신에게 진실하기를 요구하는 변호사에게 유민호는 결국 김세희를 죽인 것이 자신임을 자백합니다. 그리고 양신애 변호사는 죽은 김세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두 사람이 교통사고를 일으켜 죽게 만들었던 한선재(서영주)의 시신 유기 장소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유민호가 꼼짝없이 자신의 범죄를 자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양신애 변호사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사실 유민호가 만나고 있었던 사람은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직접 나설 수 밖에 없었던 한선재의 어머니 이희정이었고, 김세희는 당시 사고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죽기 전 한선재의 부모에게 전화로 사실을 고백한 상황이었습니다. 이희정과 남편 한영석은 오직 죽은 아들의 시신이라도 거둘 수 있기를 원할 뿐이었지만 양신애 변호사가 가짜라는 것을 뒤늦게 눈치챈 유민호는 자해극으로 다시 한번 상황을 모면하려고 합니다.



 

결국 유민호는 양신애 변호사인 척 했던 이희정이 지적했듯이 '창의력도 없고 논리도 맞지 않는' 억지 주장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던 최악의 살인자로 밝혀집니다. 하지만 모든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영화가 여러 다른 버전의 진실을 펼쳐보이기 때문에 관객으로서는 영화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유민호의 참모습을 알아채기가 어렵습니다. 상당히 작위적인 플롯에 불과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안정적인 연출이 받쳐주는 덕분에 장르적인 재미는 괜찮은 편이라고 하겠습니다. 영화의 전개에 따라 김세희를 연기한 나나는 악녀에서 또 한 명의 피해자로, 유민호를 연기한 소지섭은 억울한 피의자에서 폭주하는 살인마로, 김윤진은 치밀한 승부사 양신애에서 아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이희정으로 훌륭한 변신 연기를 선보입니다.

 


장르 영화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사실성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관객 특성상 [자백]은 2020년에 예정대로 극장 개봉을 할 수 있었다 한들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볼 수 있었을까 싶기는 합니다. 아무리 방송국 기자와 스텝 출신이었다 해도 한선재의 부모가 양선애 변호사를 납치해 유민호를 상대한다는 부분, 그리고 유민호의 승리로 끝나는가 싶다가 경찰들이 얼어붙은 호수 위 얼음을 깨고 유기된 차량을 끌어내는 반전은 국내 작품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는 살짝 무리하는 감이 없지 않은 설정과 결말입니다. [자백]은 전반적으로 꽤 매끄럽게 연출된 작품이라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극장 관람이었다면 좀 다른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었을 듯 합니다. @


(2023. 2. 1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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