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극장 개봉작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넷플릭스에서 감상했습니다. 딜리아 오웬스 작가의 2018년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TV 단막극과 미니시리즈를 연출했던 올리비아 뉴먼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여기에 리즈 위더스푼이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테일러 스위프트가 원작을 읽고 만들었던 자신의 곡 [Carolina]를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해달라고 했다는군요. 한 마디로 여성 작가의 원작과 각색, 여성 감독과 제작자, 가수까지 참여한 여성 참여 영화의 끝판왕 같은 작품입니다.
(이하 스포일러)
가족들과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습지대에 홀로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남자 체이스 앤드류스(해리스 디킨슨)의 시체가 늪지대에서 발견되고 살인 용의자로 '습지 소녀' 카야 클라크(데이지 에드가-존스)가 체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영화의 실질적인 내용이 되는 카야의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죠.
카야는 테이트(테일러 존 스미스)로부터 글을 배우고 첫사랑을 나누지만 대학 입학 후 약속을 지키지 않은 테이트에게 버림을 받고 다시 한번 혼자가 됩니다. 몇 년 후 자신에게 다가온 두번째 남자가 체이스인데 마을에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폭력까지 휘두르는 체이스로 인해 홀로 살아가는 이상의 두려움을 느낀 카야는 출판사의 초청 일정에 따라 일주일 간 마을을 떠나게 되고 그 사이 체이스가 시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고립된 사람을 살아온 한 여성의 인생 이야기와 살인 사건의 미스테리 스릴러가 뒤섞인 내용의 영화입니다. 하지만 미스테리 스릴러로서 풀어가기 보다는 어린 시절 가족들로부터 버림 받고 사회로부터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소녀가 미 남부의 습지대에서 홀로 살아가는 인생 스토리에 좀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외로운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멜러물로서는 어린 시절 친구와의 첫사랑과 그가 떠난 자리를 차지한 나쁜 남자라는 다소 고리타분한 패턴에 의존하고 있어 작품의 중심 자리에 놓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영화의 중심은 '인간도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이고 그에 따른 삶과 죽음에 대한 판단 기준도 그 생존 방식에 따른다'는 메시지라고 생각됩니다.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카야는 돌아온 첫사랑 테이트와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카야가 숨을 거둔 이후 유품을 정리하던 테이트는 카야의 노트북에서 죽은 체이스의 목걸이를 발견하게 되죠. 영화는 콕 찝어서 카야가 체이스를 죽이는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카야가 체이스를 죽였다고 한들 카야에게 죄를 물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남기게 됩니다. 카야를 먼저 보낸 테이트가 체이스의 조개 목걸이를 파도에 쓸려 보내는 장면은 이 질문에 대한 영화의 자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체이스를 죽인 것은 혹시 테이트가 아닐까 했었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카야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체이스를 살해한 것으로 정리해주었다고 생각됩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2천4백만 달러의 제작비로 완성되어 전세계 1억4천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린 작품입니다. 미스테리 스릴러나 멜러물로서의 장르적 탁월함 보다는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나름 잘 살려낸 독특한 스토리텔링 덕분이 아니었나 싶네요. 남자에게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한마디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지지하는 메시지에 관객들이 호응을 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카야를 연기한 데이지 에드가-존스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작진과 관객 모두가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대상이 바로 카야라는 인물이었으니까요. 데이지 에드가-존스는 영국 런던 출신이라서 카야를 연기하기 위해 미국 남부 발음 전문가의 코치를 받아야 했다는군요. 세바스티안 스탠과 공연했던 [프레쉬](2022)에 이어 두번째 주연 작품으로 감상했는데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와 상당히 닮아보이는 건 저만 그런 걸까요. @
(2023. 2. 12 작성)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