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5

[영화] 스토어웨이 (Stowaway, 2021)

2021년 SF 영화 [스토어웨이]를 넷플릭스에서 감상했습니다. 본래 극장 상영을 위해 제작되었고 소니에서 배급을 할 예정이었지만 제작이 완료된 시점의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극장 상영은 취소되고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공개가 되었던 작품입니다. 2018년 아이슬란드 영화 [아틱]으로 장편 데뷔한 브라질 출신의 조 페나 감독에게 [스토어웨이]는 두번째 장편 연출작입니다.



 

IMDb 평점이 5점 대 밖에 안되는 영화라서 잠시 망설이다가 애나 켄드릭과 토니 콜레트가 출연한 영화라서 속는 셈치고 보기로 했습니다. 대체 얼마나 허술하게 만든 영화이길래 이렇게 평점이 낮은 건가 싶었는데, 영화의 만듬새는 오히려 극사실적인 연출에 높은 점수를 주고도 남을 만 했고 그 보다는 인종 이슈와 인위적인 결말 같은 부분들이 일부 시청자들의 눈에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계획에 없던 흑인 탑승자는 민폐 덩어리일 뿐이고 동양인은 인정머리 없을 따름이며 백인 여성들은 지휘를 하거나 모두를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하는 인종적 편성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삐딱하게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최근에도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키겠다는 엘론 머스크와 그런 건 돈낭비에 불과하다는 빌 게이츠의 설전이 기사화되고 있는 와중이라 [스토어웨이]에서 화성으로 향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근미래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각본을 쓴 조 페나 감독과 라이언 모리슨 역시 다름아닌 엘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야기를 구성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스토어웨이]에서 보여지는 화성 여행은 항공기 1등석이나 크루즈 여객선 같이 정갈하고 편안해보이는 것과는 정반대로 무척 아슬아슬하게만 보입니다. 지구 대기권 밖에 준비되어 있는 우주 비행체까지 도달하는 로켓 발사 장면만 하더라도 저러다 로켓이 폭파하거나 궤도를 벗어나 실패하더라도 별로 이상하지도 않을 것처럼 위태롭기만 합니다. 인류가 대기권을 벗어나고 우주를 여행을 하고자 하는 과정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인지를 [스토어웨이]의 도입부는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이하 스포일러)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토어웨이]는 기대 이상으로 사실적인 SF 드라마입니다. 인공 중력을 만들기 위해 설계된 우주 비행체 MTS의 내부는 허리를 마음 놓고 펴고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이고 등장 인물들이 먹는 음식들 또한 전투식량에 가까운 형태라 앞으로 2년 간 이들이 견뎌야 할 화성으로의 여행과 임무가 결코 멋있게만 보이지가 않습니다.

문제는 본래 2인용으로 설계되었던 우주 비행체를 3인까지 쓸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 MTS인데 이 비행체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까지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죠. 지구 기지의 기술지원 엔지니어인 마이클(세이미어 앤더슨)이 어떻게 우주선의 기계 장치 안에 갖혀 있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영화 도입부에서 로켓이 본 궤도에 이르지 못했던 것도 그의 몸무게를 계산해넣지 않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미세한 차이가 임무의 성패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의 생존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죠.



 

설상가상으로 MTS 내부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해주는 장치가 망가지고 그로 인해 네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산소의 양이 부족할 수 밖에 없게 되자 네 사람은 생존과 임무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만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스토어웨이]는 그렇게 SF 영화의 가면을 쓴 윤리적 딜레마의 영화로서 그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가장 먼저 생물학자 데이빗(다니엘 대 킴)이 화성에서의 연구 목적에 사용하려던 해조류를 키워 부족한 산소 발생량을 늘려보기로 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결국 불청객인 마이클 스스로가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상황을 설명해주고 도구도 제공해주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의학자 조(애나 켄드릭)가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본 후에 최후의 선택을 하자고 주장합니다. 인공 중력을 얻기 위해 MTS의 반대편에서 돌고 있는 구조물 내부의 액화산소를 가져다 쓰기로 하는 것이죠.




[스토어웨이]는 대기권 밖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싸움을 그리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래비티](2014)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비티]가 라이언(산드라 블록) 개인의 고독한 생존 투쟁으로 대부분의 러닝 타임을 채우고 있는 반면 [스토어웨이]는 유사한 상황 속에 처해진 인간 집단의 딜레마에 집중합니다. 이럴 때 해결책은 서로 간의 난폭한 이전투구이거나 누군가의 고귀한 희생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스토어웨이]는 그중 후자를 선택함으로써 아주 고리타분한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갈등은 표면화되지 않고 다수를 위한 한 사람의 희생은 영화가 고귀한 모습으로 그리려고 할 수록 시청자의 시선에는 너무 교훈적으로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저도 [스토어웨이]의 참신하지 못한 결말이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것 말고 이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출구가 달리 없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토니 스타크를 구원해준 캡틴 마블이라도 나타나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텐데 [스토어웨이]의 세계관에는 그런 멋진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인류에게 현실의 우주 공간은 아주 험난하고 모든 상황이 열악하기만 합니다. 그와 같은 우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영화라서 개인적으로는 [스토어웨이]가 참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토니 콜레트와 앤나 켄드릭의 차분한 연기도 영화와 참 잘 어울렸고 다니엘 대 김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


(2023. 2. 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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