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0

[영화] 노스맨 (The Northman, 2022)

2022년 8월 개봉작 [노스맨]을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트로이](2004), [킹덤 오브 헤븐](2005), [300](2007), 최근에는 [왕좌의 게임]과 유사한 전쟁 역사물로 생각하고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이라면 적잖이 당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적어도 한 두 차례의 대규모 전투 장면 같은 것을 기대했을텐데 [노스맨]은 그런 시각적인 스펙타클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작품이니까요.


(이하 스포일러)



10세기 바이킹 부족의 왕자가 아버지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삼촌의 칼날을 피해 도망했다가 뛰어난 전사로 성장하여 복수에 성공한다는 큰 줄거리는 다름아닌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의 그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라이언 킹]의 서사 자체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가져온 것이었다고 본다면 [노스맨]은 기왕이면 영국 대문호의 비극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주는 편이 좀 더 있어보이고 좋은 거겠죠.

서사적 근간은 비록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못해 고루한 느낌마저 줄 수 있는 [노스맨]이지만 그 디테일에 있어서는 북유럽 바이킹의 역사와 전설에서 가져온 소재들을 풍성하게 담아내면서 기존의 전쟁 역사물들과의 차별점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마블 영화들을 통해 친숙해진 북유럽 신화 속 소재들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그 원류를 탐험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 [노스맨]의 독특한 분위기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역시나 공동각본과 연출을 맡은 로버트 에거스(Robert Eggers) 감독이라고 하겠습니다. 감독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안야 테일러-조이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했던 [더 위치](The VVitch : A New-England Folktale, 2015), 그리고 윌렘 데포와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라이트하우스](The Lighthouse, 2019)에서 보여준 독특한 연출 감각은 다른 장르물들과는 분위기가 한참 다른 [노스맨]을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관문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노스맨]은 특히 [더 위치]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한 질감의 프로덕션 디자인과 유사한 결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더 위치]와 [라이트하우스]의 감독 로버트 에거스가 만든 새 영화로서 [노스맨]은 좀 의외의 선택이었고 역시나 결이 좀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기괴함에 대한 취향은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좀 더 대중적인 스토리라인의 이야기를 다뤄야만 하는 숙제를 절충해 내놓은 느낌이랄까요.

한번쯤 큰 규모의 작품(제작비 6천만불)에 도전해보는 기회를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만 [노스맨]은 [더 위치]와 [라이트하우스]에 매혹된 팬들이 보고 싶었던 종류의 이야기와는 좀 거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노스맨] 보다는 현재 촬영 중인 새 영화 [노스페라투]에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진짜 장기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게 됩니다.



[노스맨]에는 한 자리에 모아놓기 힘든 배우들이 의외로 많이 출연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빨래판 몸짱 주연 배우가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이고 안야 테일러-조이, 니콜 키드먼 정도가 출연하는 건 알았지만 암레스(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아버지 아우르반딜 왕으로 에단 호크가 출연한 건 의외였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로버트 에거스 사단의 일원이 되어버린 윌렘 데포도 등장하고, 아이슬란드 출신 가수 비요크도 짧지만 강렬한 출연을 하셨더군요.

내용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부분은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군드룬 왕비를 통해 모성에 대한 신화를 박살내버리는 부분이었습니다. 생존과 후계를 위해 늑대와 인간의 중간 지점쯤에서 싸워야 했던 전사들 뿐만 아니라 우리 여성들도 그에 못지 않은 거친 욕망과 냉혹함을 소유자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 [노스맨]이었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래서 마블의 [토르 : 라그나로크](2017) 이후 등장하는 매력적인 발키리(테사 톰슨)와 달리 [노스맨]에서의 발키리(케이티 패틴슨)는 기존 남성들의 성적 대상화가 되었던 모습을 거부한 진짜 전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2023/03/02

[축구] 프리미어리그 2022-2023시즌 25라운드

프리미어리그 2022~2023 시즌 25라운드 결과입니다.



풀럼 vs 울버햄튼 1:1
풀럼이 울버햄튼과의 홈 경기에서 전반 23분 파블로 사라비아에게 선제골(라울 히메네즈 도움)을 허용했지만 후반 64분 매너 솔로몬이 환상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동점골(3경기 연속 골, 안토니 로빈슨 도움)을 넣었고 이후 경기를 뒤집기 위해 분전했지만 아쉽게도 승점 1점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에버튼 vs 아스톤빌라 0:2
지난 라운드 아스널과의 홈 경기에서 2:4 스코어로 역전패했던 아스톤 빌라가 이번 라운드에는 에버튼 원정에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군요. 후반 63분 패널티킥 기회를 살려 선제골이자 이 날 결승골을 넣은 올리 왓킨스는 5경기 연속골 기록을 작성했습니다. (에밀리아노 부엔디아 추가골, 존 맥긴 2도움)



리즈 vs 사우스햄튼 1:0
하비 그라시아스 감독을 새로 선임한 리즈 유나이티드가 홈 경기 승리로 드디어 강등권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리그 최하위 사우스햄튼과의 홈 경기였던 덕분이었는지는 지켜봐야 하겠네요. (주니오르 피르포 결승골, 잭 해리슨 도움)



레스터시티 vs 아스널 0:1
리그 1위 아스널이 레스터시티 원정에서 승점 3점을 챙겨왔습니다. 전반적으로 레스터시티가 대량 실점을 가까스로 면했다 라고 할 수 있는 경기였네요. 전반 VAR 판정(벤 화이트 반칙)으로 선제골을 취소 당했던 레안드로 트로사르가 후반 시작과 함께 가브리엘 마르니텔리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웨스트햄 vs 노팅엄 4:0
웨스트 햄은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홈 경기에서 오랜만에 대량 득점에 성공하며 기분 좋은 승리를 거뒀습니다. 월클 골키퍼 케일러 나바스가 버티고 있는 노팅엄의 수비진은 후반 70분까지 무실점하며 잘 버티다가 이후 급격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대니 잉스 2골, 데클란 라이스 1골, 미카일 안토니오 1골)



본머스 vs 맨시티 1:4
맨시티도 강등권의 본머스 원정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리그 1위 아스널을 승점 2점차로 다시 따라 붙었습니다. 맨시티의 선발 공격진으로 출격한 훌리안 알바레즈, 엘링 홀란드, 필 포든 3명의 선수가 각각 1골 1어시스트를 했네요. (엘링 홀란드 시즌 27호골) 하지만 후반 82분 제퍼슨 레르마에게 만회골을 허용하면서 클린시트에는 실패하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크리스탈팰리스 vs 리버풀 0:0
주중에 치뤄진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2:5로 대역전패를 하며 망신을 샀던 리버풀은 이번에는 크리스탈 팰리스 원정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면서 승점 1점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크리스탈 팰리스의 비센테 과이타 골키퍼가 4세이브를 기록했네요.



토트넘 vs 첼시 2:0
콘테도 없고 투헬도 없이 토트넘과 첼시의 런던 더비는 토트넘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토트넘이 엄청 잘 했다기 보다는 첼시가 정말 어처구니 없이 맥 빠진 경기력을 선보인 덕분이었다고 할까요. 첼시는 현재의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이고, 크리스티안 스텔리니 수석코치와 함께 꿀 같은 홈 2연승을 맛본 토트넘이 콘테 복귀 이후 어떻게 다시 바뀌게 될지가 궁금하네요.



아스널 vs 에버튼 4:0
리버풀 vs 울버햄튼 2:0

2023/02/28

[영화] 치히로 상 (ちひろさん / Call Me Chihiro, 2023)

지난 2월 23일 목요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치히로 상]을 감상했습니다. 2014년에 출간된 야스다 히로유키의 만화를 각색해서 영화화한 작품이네요. 이마이즈미 리키야 감독의 연출로 아리무라 카스미가 주인공 치히로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출연진 가운데 가장 낯익은 얼굴라고 할 만한 배우로는 치히로의 예전 직장 상사(?)로 출연한 릴리 프랭키 정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갖은 양념으로 화려한 풍미를 자랑하는 요리가 있는가 하면 그와 정반대로 일본식 주먹밥인 오니기리와 같이 지극히 단순한 재료로 만든 한끼 식사가 있기도 하죠. 일본 영화들이라고 해서 다 담백하기만 한 것도 아니지만 [치히로 상]은 그 나라의 요리법과 음식 맛을 닮은 영화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소박한 느낌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성 매매 업소에서 일했던 치히로(아리무라 카스미)가 해변가 마을의 도시락 전문점에서 일하는 동안 이야기가 진행되고 다시 소 키우는 농장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극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시락 전문점의 사장 내외나 다른 이들에게 가족과 같은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오래 머물지 않고 다시 새로운 곳으로 떠나갑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존재이듯 만남 이후 이별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죠.



치히로의 성장 과정이나 마사지 샵에서 일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은 어렴풋이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이 없습니다. 대신 치히로의 주변 인물들, 여고생이나 꼬맹이 남자 아이 등을 통해 극중 인물들 간의 공통 요소들을 꼽아볼 수 있지 않나 싶네요.

이들은 모두 가족들과 함께 살고 학교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그 안에 제대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합니다. 혼자 떠돌아 다니듯 생활하다가 치히로와 알게 되고 다시 서로와 친구를 맺게 되기도 하죠. 하지만 치히로 본인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 하지 않고 노숙자와 도시락을 나눠 먹고 목욕까지 시켜줄 정도로 상냥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남길 수 밖에 없는 일반적인 인간 관계에는 정착하지 않기로 한 것 같습니다. 아니 그 보다는 더이상 정착할 수가 없게 된 것처럼 보인다고 하는 편이 맞겠네요.




영화는 그런 대로 밝은 분위기를 보여주면서 마무리됩니다. 바닷가 마을에서 도시락 전문점 일을 할 때에는 '마사지 샵에서 일했었다'고 답해야 했지만 이제는 '도시락 전문점에서 일했었다'고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한 챕터씩, 예전 보다 좋아진 과거를 쌓아가는 것만이 남은 과제인 것만 같습니다.

일본 영화의 특성상 [치히로 상] 역시 원작의 분위기와 내용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으리란 추측을 해봅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원작 만화도 접해보고 싶습니다. @